올 8월 90세 생일을 맞았다.
세르지오 레오네, 테런스 맬릭, 브라이언 드 팔마, 쿠엔틴 타란티노 등과 작업했다.
〈비밀의 숲〉은 다른 길을 간다. 수술로 인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된 건 다름 아닌 주인공이다. 그리고 그는 검사다. 그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객관적 사실관계에 근거해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. 덕분에 드라마 초반에는 황시목이 범인이라는 추측들이 난무하기도 했다. 보통의 이야기에서 악당의 배경일 수 있는 인생을 짊어진 주인공 황시목은 〈비밀의 숲〉에서 일종의 슈퍼히어로로 기능한다.
이런 영화들 중 상당수는 핑계만 생기면 조선 땅을 뜨거나 뜨려고 발버둥치고 주인공들은 대부분 탈주를 꿈꾸고 그러는 게 가능한 사람들이다. 상하이, 만주, 도쿄, 블라디보스톡, 하와이. 목적지는 어디라도 상관없다. 이러니 이 영화들이 내민 진지한 주제보다 '아가씨'의 숙희가 속으로 내뱉는 독백이 가장 솔직해보이고 또 마음을 울리는 것이다. "한 밑천 잡아서 조선 땅 뜬다. 조금만 참자. 이 시골뜨기 종년들." 하긴 어찌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.
킹의 소설을 읽으며 나는 영어를 배웠다. 정말 감사한 것은, 내겐 그것이 공부가 아니었다. 그냥 현실 도피 수단으로 재미난 영어 소설을 읽었을 뿐인데, 원서를 1년에 100권 씩 읽어대니 어느 순간 영어가 업그레이드 되더라. 미국인과 이야기를 나누면 다들 나의 문장력에 감탄하더라. 생각해보라, 한국에 한번도 와 본 적이 없는데 오로지 조정래라는 작가가 좋아서 그의 작품 전권을 읽고 태백산맥 속 염상진의 말투로 한국어를 구사하는 미국인을 만난다면, 얼마나 반갑겠는가. 한국 3M 근무시, 본사 직원들 중엔 킹의 애독자가 많았는데 그들은 다들 날더러 Amazing! 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.
결과적으로 히치콕에 대한 최고의 오마주를 바친 건 구스 반 산트다. 히치콕의 <싸이코>를 숏 바이 숏으로 완성한 구스 반 산트의 <싸이코>는 리메이크라기 보단 일종의 필사본이나 다름없다. 문체가 다를 뿐 동어반복의 문장에 가까운 구스 반 산트의 <싸이코>는 아이러니하게도 히치콕의 원본과 완벽한 대조군을 이루는 필사본이다. 오프닝 시퀀스부터 엔딩까지 최대한 원작에 밀착한 방식으로 완성된 구스 반 산트의 <싸이코>는 온전히 평단과 관객에게 조롱 당했다. 하지만 구스 반 산트는 용감했다.
영화 '인터스텔라'에서 주인공 쿠퍼는 이렇게 말했다. "인류는 여지껏 불가능을 극복하는 능력으로 스스로를 정의했다." 이것 참 뭐랄까, 중학생 서재에서 우연히 발견한 잠언록의 37번째 페이지쯤에서 등장할 법한 고리타분하고 고루한 말이다. 그러나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. 어쩌면 지금 인류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고리타분함과 더 많은 고루함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. 우주와 지구 앞에서 우리는 지금보다 더 무뚝뚝한 엔지니어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.